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광주 수피아여학교(須彼亞女學校)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을 경험하고 1930년 4월 중순경 동교생(同校生) 6명과 함께 양림산(楊林山)에 모여 조선독립운동을 위한 비밀결사 ‘백청단’을 조직하고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광주학생운동 때 일본인 학생과 달리 한국인 학생만 다수 검거되는 것을 보고 민족적 의식을 갖고 독립운동을 결심하였다. 이들은 은반지 30여 개를 만들어 뒤에 암호를 새겨 단원임을 표시하였으며, 회비와 의연금을 모아 문맹퇴치(文盲退治)나 수재양성(秀才養成) 사업 등 계몽운동과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졸업 후 취업이나 유학, 결혼 등으로 단원들이 흩어지게 되면서 1932년 7월 백청단을 해소하였다.
이후 전라남도경찰부(全羅南道警察部)와 광주경찰서(光州警察署) 고등계(高等係)에서 다른 ‘사상사건’을 수사하면서 백청단이 드러나, 광주 이일학교(李一學校)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33년 1월 9~10일 서복금(徐福今)·허귀례(許貴禮) 등 동지 10여 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같은 달 31일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동지 6명과 함께 검찰로 송치되었다. 얼마 후 석방되었으나, 이 일로 교사직을 강제로 박탈당하였다. 이후 신사참배(神社參拜) 문제로 폐교당한 수피아여학교의 재건에 힘썼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일보(朝鮮日報)(1933. 1. 12)
- 동아일보(東亞日報)(1933. 2. 2)
- 중앙일보(中央日報)(1933. 2. 3)
- 매일신보(每日申報)(1933. 2. 3)
- 회고록(소심당조아라장로희수기념문집간행위원회, 1989) 382~383, 387면
- 수피아100년사(광주수피아여자중·고등학교, 2008) 257~258, 280, 312~313, 354~35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