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3월 30일 이천군 마장면(麻長面) 오천리(午川里) 오천 장터에서 1,000명의 대규모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중심에는 이기재(李起載)와 이창호(李昶鎬)가 있었다. 이들은 ‘3월 30일 오천 장날 장터에서 집합하라’는 통문을 작성해 각 마을에 뿌렸다. 3월 30일 양촌리(陽村里) ‘사회마당’에 집합한 군중들은 오천리로 가서 시장터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3월 31일에는 면내 북동쪽 장암리(長巖里) 마을에서 천도교 교도들이 주도하여 약 250명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오천리헌병주재소(午川里憲兵駐在所)를 공격하였다. 헌병들의 해산 명령에 저항하던 군중들은 공포(空砲)를 발사하는 헌병과 지원 나온 보병들의 총검을 사용하는 무력적 진압에 20여 명이 사상(死傷)을 당하고 해산하였다.
목리(木里)의 이인래는 마장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면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본 헌병에 붙잡힌 그는 4월 17일 이천헌병분견소(利川憲兵分遣所)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60도(度)의 즉결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3.1운동실록(이용락, 1969) 393~396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180~18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