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각지의 한국인 상점이 철시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원산 상인들이 나서지 않았다. 황종성은 상인들이 상점을 철시하고 만세를 부르게 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국가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것은 국민의 의무이다. 경성에서는 자유를 찾기 위해서 사상자까지 생겼다. 또 각지에서 철시를 하니 원산에서도 같이 철시동맹휴업을 해야 할 것이다. 여기 불응하면 그 가옥에 불을 지르거나, 또는 생명에도 위해를 가할 것이다.”라는 경고문을 잉크로 작성하였다. 먹으로도 “명일부터 폐점하라. 위반할 경우 그 가옥에 방화한다”라는 내용의 격문을 작성하였다.
4월 5일 오후 10시 30분경부터 11시경까지 김진수(金鎭洙)⋅이종섭(李鍾燮) 등과 함께 원산부 영정(榮町)에서 석우동(石隅洞)에 이르는 사이에 있는 잡화상과 이발소, 음식점, 여관 등 9개소에 경고문과 격문을 배포하였다. 4월 6일부터 잡화상 등이 문을 닫고, 7일에는 한국인 상점이 모두 철시하였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황종성은 5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원산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5. 5)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67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