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07년 일제에 의한 황제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후기의병이 일어나 전국적인 항쟁을 이어갔다. 이 때 이여숭은 유상돈(劉尙敦) 의병장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계석노가 모집한 의병에 차연욱(車連旭)·이정식(李定植)과 함께 참여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총·곤봉 등으로 무장하고 1908년 10월 14일 평안북도 의주부 송장면(松長面) 영달동(永達洞) 신운상(申雲祥)의 집에서 군자금을 거두었다. 계석노의 지휘 아래 이여숭은 차연욱·이정식 등 수명의 의병과 함께 1908년 11월 17일부터 1909년 3월 26일까지 여러 차례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차연욱·이정식과 같이 철산군 고성면(古城面) 합삭리(合朔里) 김용학(金龍學)의 집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고, 또 차연욱과 함께 선천군 산면(山面) 하단동(下端洞) 임일규(林日奎) 집에서도 군자금 모금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이여숭은 별도로 수 명의 의병을 이끌고 산면 구담리(龜淡里)의 차도흥(車道興) 집에서도 군자금을 모금하였으며, 점면(站面) 봉곡리(鳳谷里)의 오희택(吳熙宅) 집에서는 군자금을 모으고 오희택을 살해하는 등 의병항쟁을 이어가다 체포되었다.
이처럼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던 이여숭은 1910년 4월 11일 평양공소원(平壤控訴院)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교형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1910년 5월 1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1910년 6월 13일 평양감옥 대흥부출장소(大興部出張所)에서 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0. 5. 13)
- 통감부원안(統監府原案)(통감 자작:1910. 6. 7)
- 주본(奏本)(1910. 6. 9)
- 관보(官報)(1910. 6. 20)
-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1910.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