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07년 일제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한 고종황제의 특사를 문제 삼아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다. 나아가 군대해산을 단행하여 한국의 무장력을 해체하였다. 해산된 대한제국 군인들은 자결로 저항하거나 민족적 이해에 눈을 뜬 애국적 군대로 탈바꿈하여 항일 의병투쟁에 참여하였다. 이를 계기로 촉발된 후기의병은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면서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무장력을 바탕으로 전국에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염봉선은 이러한 후기의병기에 노학선 외 수명과 의병부대를 결성하여 곤봉으로 무장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1909년 9월 5일 밤 황해도 재령군 우율면 면포동장(面浦洞長) 신재혁(申在赫)과 인근의 이한조(李翰祚)를 같은 마을의 주막 김면호(金冕浩)의 집에 모아놓고 군자금 20원을 모금하였다. 14일 오후 11시경 우율면 하종포(下宗浦)의 황태연(黃泰淵)과 그의 아버지 황종현(黃鐘顯)에게서 군수품과 군자금을 거두었다. 또 그날 밤에 율면(栗面) 간동(間洞)의 재산가에게서 군자금을 모금하고자 마을로 가던 중 일본 경찰을 만나 접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하다 체포된 염봉선은 1909년 12월 27일 평양공소원(平壤控訴院)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폭도(暴徒)에 관한 편책(編冊)(황해도관찰사서리서기관:1908. 5. 27)
- 통감부원안(統監府原案)(통감 자작:1909.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