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3월 기독교 장로인 손종일(孫鍾一)로부터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제의를 접하고, 마을 유지인 엄주신(嚴柱信) 등과 논의했다. 이들은 3월 24일 칠원면 구성리(龜城里)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3월 24일 시위에서 7~8백명의 주민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3일 장날에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엄주신·박경천 등과 만세운동을 계획하며 대형 태극기 1기와 소형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3일 오후 3시경 시장 한복판에서 만세를 부르며 태극기를 나눠주며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본 군경은 총검으로 시위 군중을 위협했으나 시위대는 굴복하지 않았다. 결국 마산(馬山)에 주둔한 일본군이 출동하여 시위 군중들을 체포했다.
3월 24일, 4월 3일 칠원면 칠원시장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윤형규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5월 20일 부산지방법원(釜山地方法院) 마산지청(馬山支廳)에서 소위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19. 6. 10)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304~30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