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천마산대는 1920년 3월 대장 최시흥(崔時興)을 비롯해 최지풍(崔志豊)·박응백(朴應伯)·최천주(崔天柱)·김세진(金世鎭) 등 대한제국(大韓帝國) 군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항일무장단체이다. 조직의 근거지가 평안북도 의주군 고령삭면(古寧朔面)의 천마산(天摩山)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천마대(天馬隊)·천마별영(天摩別營)·철마별영(鐵馬別營) 등으로도 불렸다. 대장 최시흥이 이끄는 500여 명의 단원이 화승총과 칼 등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뒤 천마산을 근거지로 일제의 경찰서·경찰관주재소·면사무소를 공격하는 등 유격전을 벌였으며, 일본 경찰과 친일 밀정을 암살하거나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도 병행하였다.
천마산대에서는 일제의 추격이 심해지자, 1920년 5월 16일 초직령(草直嶺) 산속에서 중대장 이하 단원 모두가 혈서(血書)로 끝까지 해산하지 않기로 서약하기도 했다. 다수가 체포된 후에도 남은 대원들은 일본 경찰의 집요한 감시와 추격을 피하여 인근의 두룡산(頭龍山), 초산(楚山) 등지로 근거지를 옮겨가면서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1922년 최시흥 등 간부들이 붙잡히면서 국내 활동은 중단되었으나, 검거를 피한 대원들이 만주(滿洲)로 건너가 독립군에 편입되어 무장투쟁을 이어갔다.
결성 후 천마산대에서는 중대장 최시흥·제1소대장 허기호(許基浩)·제2소대장 최지풍·제3소대장 김덕명(金德明) 등의 군대식 편제 아래, 낮에는 화승총으로 조총 교련과 곤봉으로 병식(兵式) 체조를 하는 등 군사훈련을 하였다. 장명진 역시 소대장 한성호(韓成浩) 등의 지도 아래 동지들과 함께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들은 밤에는 총을 메고 산에서 마을로 내려가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는데, 1920년 4월 26~27일 구성군 천마면(天摩面) 연창동(延昌洞)에서 부호(富戶) 정학주(鄭學柱)·김응구(金應龜)·유한진(劉漢鎭) 등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동지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8월 3일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 신의주지청(新義州支廳)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2년 1월 11일 가출옥으로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매일신보(每日申報)(1920. 8. 29)
- 대판조일신문(大阪朝日新聞) 한국관계기사집(韓國關係記事集)(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2016)Ⅱ 46, 281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천마대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