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평안북도 삭주군(朔州郡) 양산면(兩山面) 출신이다. 3.1운동에 참가한 최시흥(崔時興) 등이 1920년 3월 평안북도 의주군 고령삭면(古寜朔面) 천마산(天摩山)을 기반으로 조직한 천마산대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6월경 천마산대 동지 20명과 함께 천마산 혹은 창성군(昌城郡) 서흥동(瑞興洞)에서 화승총과 곤봉으로 군사훈련을 받으며 무장투쟁을 준비했다. 같은 해 4월 26일 김국선(金國先)‧한성호(韓成浩) 등과 화승총을 가지고, 평안북도 구성군 천마면(天摩面)에서 독립운동자금 150원을 모집하였다.
다음날에는 김응구(金應龜)‧유한진(柳漢珍) 등에게 군자금 납부 승낙서를 받았다. 5월 16일 초직령(草直嶺) 산속에서 최시흥 이하 천마산대 대원들과 독립이 될 때까지 해산하지 않기로 서약했다. 1920년 6월 29일 최시흥의 지휘하에 삭주군 양산면 부근 골짜기에서 일제 경찰과 교전을 벌였다.
그 결과 김국선‧한성호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0년 8월 3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강도‧제령 제7호 위반’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아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1920. 8. 29, 1922. 9. 3)
- 오사카아사히신문(大阪朝日新聞)(1920. 9. 1)
- 가출옥관계서류(假出獄關係書類)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