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39년 9월 진학을 목적으로 일본으로 넘어가 나고야시에 위치한 애지박기학교(愛知薄記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42년 1월 무렵 나고야시 중구(中區) 광소로(廣小路)에 위치한 삼기공업주식회사(三機工業株式會社)의 창고지기로 취직 후 고용주로부터 차별을 받고, 독립의식을 고취하고 있던 권오균(權五均)과 함께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결의하였다.
같은 해 11월 나고야시 항구(港口)에 위치한 ‘애지시계 영덕공장(愛知時計 永德工場)’건설공사장에서 권오균·김원초웅(金原初雄)·태전정행(太田政行) 등과 함께 비밀결사조직인 와룡회를 조직하였다. 와룡회는 운동 방침으로 때가 되면 일제히 궐기해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소속 직장 내 한인들을 규합하고, 독립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계몽 활동을 전개하는 데 목표를 둔 단체였다. 이때 일본 남쪽 지역으로 이동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듬해인 1943년 1월 28일 무렵 김원초웅과 함께 암본종승(岩本鍾承)과 나고야시 항구(港區) 도영신전(稻永新田) 성산반장(星山飯場) 부근 도로에서 회합하여 와룡회 조직 당시 협의한 사항과 독립운동 방략을 논의하였다. 이후 같은 해 7월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비밀회합을 하며 동지를 규합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활동을 탐지한 일제 경찰에 의해 1943년 8월 5일 동지 9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듬해인 1944년 6월 19일 나고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을 이유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7월 29일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고 1945년 11월 23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나고야지방재판소(名古屋地方裁判所):1944. 7. 29)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특고월보(特高月報)(일본 내무성 경보국 보안과, 1944. 7)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1976) 제5권 606면
- 소화특고탄압사(박경식, 1976) 제8권 162~163, 16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집 1383~1384, 138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별집3권 231~232, 2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