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일제는 1907년 7월 불평등한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을 체결하여 한국 군대를 해산시켰고 군인들은 의병에 참여해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박익성은 무주 출신 의병장 신명선 의진에 들어가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11월 15~16일 의병 40여 명과 함께 총포와 군도‧곤봉 등으로 무장하고 거창군 당동(堂洞)에서 화승총 등 병기와 군량미를 모집하였다. 또한 무주군 무풍(茂豊)에서 군자금과 군수품 등을 모집하였다. 이러한 의병활동을 무주와 충북 영동 일대에서 전개하다가 1909년 3월 28일 체포되었다.
1909년 5월 11일 청주구재판소에서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아 공주감옥 청주분감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8월 22일 탈출하였다. 같은 해 8월 30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징역 15년을 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청주구재판소 : 1909. 5. 11)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 : 1909. 8. 30)
- 폭도(暴徒)에 관(關)한 편책(編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