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21년 8월 함경남도 일대에서 태극단원의 일원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이로 인해 당시 함흥(咸興)에 주둔했던 일본군 부대가 출동하기도 했다. 1922년 9월에도 평안남도 맹산군 풍림리에서 태극단원의 일원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맹산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2월 16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태극단은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로 단장 조인관(趙仁官)을 비롯하여 정삼승(鄭森承)·김동준(金東俊) 등이 창바이현(長白縣)과 임강현(臨江縣)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단원 수는 한 때 2,000여명에 이르렀다. 의용대를 편성하여 국내에서 항일투쟁을 펼쳤던 단체였다.
1926년 1월 참의부 참모부장 윤성좌(尹成佐)의 명령으로 김정섭(金丁涉)과 함께 평안도와 함경남도 등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박제권은 참의부 제5중대장의 직속 일등졸로 같은 계급의 김정섭 등 17명을 한 부대로 조직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했다.
국내에 잠입한 이래 지속적으로 무장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박제권 일행은 4월 13일 맹산군 지덕면(智德面) 용담리(龍潭里) 방석종(方錫宗)의 집에 잠입했다가 맹산경찰서 소속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1926년 6월 3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강도미수’ 등으로 징역 8년을 받았다. 1929년 4월 26일 부산형무소에서 출옥할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가출옥관계서류(假出獄關係書類)
- 동아일보(東亞日報)(1922. 10. 3, 1926. 4. 24, 6. 6)
- 매일신보每日新報(1922. 10. 3)
- 시대일보(時代日報)(1926. 4. 24,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