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백준흥은 1921년 음력 10월 20일 서로군정서 군인 반장 송문주 외 5명의 동지와 함께 지안현에 소재한 박충희(朴忠希)의 집에 가서 밀정 혐의가 있는 한국인을 처단했다.
서로군정서는 1919년 만주(滿洲)에 조직되었던 독립군정부로서 서간도의 무장 항일단체가 결합하여 성립된 것이었다. 독립군 간부 양성을 위해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설립하여 운영함으로써 독립군의 중추가 되는 인재를 다수 배출하였고, 국내와 만주(滿洲)에서 무장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예컨대 1919년 5월 삼수군(三水郡)의 영성주재소(嶺成駐在所), 7월 삼강주재소(三江駐在所)를 습격했다. 1921년에는 만주의 주요 친일 단체였던 보민회(保民會) 등을 공격하여 해체시켰다. 그리고 일본 거류민회를 습격하여 친일 기관들을 소탕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1923년 말에는 참의부에 가입하였다. 참의부는 중앙에 중앙의회를 두고 군사와 민정을 통괄하는 한편 13개 지방행정구와 5개 무장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항일전쟁과 국내진공작전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게릴라전을 표방하였다. 1920년대 중반에는 국내에 진공하여 군사 활동을 성공적으로 펼친 바 있다.
백준흥 역시 1925년 음력 8월 10일 참의부원 박학빈(朴學彬) 등 8명과 공모하여 평안북도 강계군 외귀면(外貴面) 흥판동(興判洞)에서 일본 경찰들과 교전을 벌였다. 21일에도 일본 경찰과 교전을 치르며 무장 투쟁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31년 11월 1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등으로 징역 7년을 받았다. 1936년 11월 15일 신의주형무소를 출옥할 때까지 약 5년 2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가출옥관계서류(假出獄關係書類)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참의부원(參議府員) 백준흥(白俊興)의 행동(行動)에 관한 초건(抄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