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2월 28일 서울에서 박희도 등이 보내온 「독립선언서」 300장과 서신이 해주읍 남본정 기독교회 오현경 목사에게 전달되었다. 오현경은 교인들과 함께 고종에 대한 봉도식과 함께 선언서 봉독식을 거행하고 선언서를 배포할 것을 계획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경 남본정 예배당에는 기독교인 180여 명이 모여 봉도식과 선언서 봉독식을 마치고 만세삼창을 불렀다.
4월에도 해주에서는 만세운동이 계속되었다. 4월 1일 오후 2시경에는 기생들이 종로에 집합하여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쳤고, 4월 3일에는 가좌면 취야리 취야장터에서 오후 2시경 600여 명의 시위대열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거리를 행진하였다.
최만원은 1919년 4월 이목시장에서 군중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7월 1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선고한 판결에 대하여 “나는 세계의 대세는 알지 못하지만 3월 1일 경성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만세를 호창하고 있어 이목시장에서 군중들과 함께 만세를 호창하였다. 조선민족으로 만세를 부르는 것은 당연하나, 일본 정부의 치안을 방해한 일이 추호도 없는 것을 경찰서에서 허위로 꾸며 지방법원에 압송하였으며, 만세를 호창하고 치안을 방해하였다고 8월의 징역을 선고한 것이 억울하여 평양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었다. 이에 억울하여 상고한다”라며 상고하였다. 1919년 9월 2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고, 1920년 4월 2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9. 20)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19권 183~18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