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4년 7월 말경 이정호(李廷鎬)·홍도(洪濤)는 길림성(吉林省) 액목현(額穆縣)에 본부를 두고 있는 적기단(赤旗團)의 취지에 찬동하였다. 이들은 적기단 본부와 국내의 연락을 유지하고,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적기단후원회(赤旗團後援會)를 설치할 것을 결의했다. 이때 이정호와 홍도의 의견에 동참하였다.
같은 해 8월 중순 무렵 함흥군(咸興郡) 읍내 천도교 교회 부근에서 홍도로부터 적기단후원회 설치 비용 80원을 받고, 회령군(會寧郡)과 북간도(北間島) 용정촌(龍井村) 지역의 연락기관을 설치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회령군(會寧郡) 삼봉역(三峰驛) 임개학(林開學)과 용정촌(龍井村)의 한세진(韓世鎭)을 만나 적기단의 연락기관이 되도록 교섭하였다.
함흥면(咸興面) 원상리(元上里)에 머물며 적기단후원회 설치와 군자금 모집 등을 전개하던 중 1920년 8월 20일 함흥에서 이정호·홍도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5년 3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을 이유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24. 11. 24)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25. 3. 12)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가출옥관계서류(假出獄關係書類)
- 시대일보(時代日報)(1924. 9. 11, 9. 16)
- 동아일보(東亞日報)(1924. 9. 11, 1925. 3. 4, 3. 5, 3. 13)
- 조선일보(朝鮮日報)(1924. 9. 11, 9. 16, 11. 29, 1925. 2. 21, 3. 4, 3. 5, 3. 11, 3. 13)
- 조선신문(朝鮮新聞)(1924. 9. 16, 1925. 3. 4, 3. 5, 3. 13)
- 매일신보(每日申報)(1925. 3. 4, 3. 11, 3. 13,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