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공주의 3.1만세 시위는 3월 7일 오후 7시경 약 150명이 앵산공원의 야소교회당 앞에 모이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를 탐지한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강제로 해산되었다. 또 3월 17일 오후 5시에는 김희봉(金喜鳳)이 공주시장에서 군중들에게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권유하고 자신이 앞장서서 ‘독립만세’를 외치자 1,000여 명의 군중들이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1일 의당면에서는 약 8개소에서 400명의 면민이 하나가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했다. 4월 2일에도 약 600명이 10개소로 나누어 만세를 연호하면서 시위행진을 벌였다.
신필범은 1919년 4월 1~2일 공주군 의당면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6일 공주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태형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1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범죄인명부(犯罪人名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10쪽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20권 13~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