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19년 3월 함남 장진군(長津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장진군에서는 3월 14일에 첫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날 오후 4시 한영태(韓永泰)ㆍ한면각(韓冕珏)ㆍ이우승(李愚昇) 등이 주민 200여 명과 함께 고토리(古土里)에 모여 만세를 부르고, 헌병주재소 앞까지 시위행진을 하였다. 탄압에 나선 헌병들이 칼과 곤봉을 휘두르자, 격분한 군중은 이에 맞섰다. 무력 충돌이 일어나고 헌병들은 시위 군중을 향해 사격을 가하였다. 이때 체포된 사람만 100여 명에 달했다.
고토리에서의 극심한 탄압에도 다음날인 3월 15일 상남면(上南面) 초원시장에서 다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어서 3월 19일에는 덕실리(德實里)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1919년 6월 30일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소요(騷擾),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7월 25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공소 취하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 : 1919. 10. 25)
- 刑事控訴事件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728~730면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19권 301~30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