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19년 중국 상해(上海)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의 해”로 선포하고 독립전쟁을 준비하였다. 이를 위해 1919년 「임시군사주비단제(臨時軍事籌備團制)」를 발표하고 국내 각지에 군사주비단을 결성했다. 단원 모집과 군수품 확보, 임시정부 활동 홍보, 친일 밀정 처단, 군사정보 조사 등이 목적이었다.
이에 근거하여 1920년 황해도에서 대한독립군사주비단(大韓獨立軍事籌備團)이 조직되었다. 봉산군(鳳山郡)‧서흥군(瑞興郡)‧재령군(載寧郡) 등을 중심으로 조직된 군사주비단과 해주군(海州郡)‧연백군(延白郡)‧평산군(平山郡)을 중심으로 조직된 군사주비단이 각각 활동하였다.
신용섭은 1920년 12월 연백군에서 유상렬(柳相烈) 등이 조직한 군사주비단에 가입하였다. 이 단체는 황문섭(黃文燮)이 조직한 제화교(濟化敎)와 연계하여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는 1921년 3월까지 해주군 각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독립사상을 선전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21년 6월 28일 해주지방법원에서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공갈미수’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이에 항소하여 같은 해 10월 1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되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 10. 1)
- 매일신보(每日申報)(1921. 10. 6,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