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0년 음력 5월 황해도 황주군(黃州郡) 영풍면(永豊面)에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지회(支會)를 조직하고, 부회장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국민회는 기독교 계통의 유력자들이 결속하여 중국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를 지원함으로써 조선을 독립시킬 목적으로 1919년 8월 평양(平壤)에서 결성된 항일비밀결사였다. 그해 9월 설립취지서 및 회칙을 제정하고, 회원들로부터 입회금(入會金) 명목으로 각 3원씩 징수하여 ??대한민보(大韓民報)??를 발행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평양에 본부를 두고 각 군(郡)에는 군회(郡會), 각 면(面)에는 향촌회(鄕村會)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인근 지역으로 조직을 확장해갔다.
대한국민회의 지회인 향촌회는 1919년 하반기에 먼저 평남의 각 군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나형순과 같은 황주 출신인 김익진은 1919년 11월 평남 용강군회(龍岡郡會) 평의원인 오창주(吳昌周)가 지운면(池雲面) 진지리(眞池里)에서 향촌회를 조직했을 때 김능일(金能一)ㆍ한종연(韓宗淵) 등과 함께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김익직은 1920년 음력 5월경 고향인 황해도 황주군에서 김필선(金必善) 등과 함께 대한국민회 지회를 조직했으며, 나형순도 여기에 참여하였다.
황주에서 지회 결성을 주도했던 김필선은 1920년 음력 3월 하순 평양에서 대한국민회 간부이자 기독교 장로인 박승명(朴承明)으로부터 대한국민회 지회와 향촌회를 조직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후 김필선은 같은 해 음력 4월 11일 나형순ㆍ계성근(桂聖根) 등과 협의하여 황주군 영풍면에 대한국민회 지회를 조직하기로 하였다.
1920년 음력 5월경 영풍면 영풍리에 있는 안재서(安在序)의 집에서 김익진ㆍ김필선ㆍ나형순을 비롯해 백승건(白承健)ㆍ김용호(金龍浩)ㆍ양창운(楊昌雲)ㆍ조필선(趙弼善)ㆍ최창호(崔昌灝)ㆍ김영택(金永澤) 등이 모여 대한국민회 지회를 조직하였다. 이 자리에서 나형순은 부회장에 선임되었으며, 회장은 백승건, 회계는 안재서, 서기는 김필선이 각각 맡았다. 이들은 대대적으로 조국의 국권을 회복할 것을 결의하고, 이때부터 각자 동지를 규합하고 향촌회와 군사주비회(軍事籌備會)를 설립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기독교도였던 나형순은 대한국민회 지회 활동 외에 지역의 청년운동을 주도하는 활동도 하였다. 1920년 7월 황주군 구성면(九聖面)ㆍ청수면(淸水面) 일대의 청년 계몽을 위해 이병조(李炳兆) 등과 함께 보성청년회(普成靑年會)를 발기하였다. 같은 해 8월 29일 보성청년회 회장에 선임되어 강연회 개최, 신문 및 도서 구매 등 농촌의 문화 향상에도 노력하였다.
1921년 7월 9일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秘密結社大韓國民會郡會及鄕村會檢擧의 件(1920. 6. 2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內地(11)
- 東亞日報(1920. 9. 12, 1921. 7. 17)
- 中外日報(1930.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