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19년 3~4월경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금천군에서는 3월 3일 서천면(西泉面) 시변리(市邊里)에 독립선언서가 붙기 시작한 뒤, 3월 10일 천도교인 200여 명이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 뒤 4월 초에 곳곳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4월 1일 백마면(白馬面) 용성리(龍城里)에서 80여 명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면사무소까지 시위행진하였다. 4월 2일에는 백마면 기독교인 등 80여 명이 현내면(縣內面) 송정리(松亭里) 방면으로 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하였다. 이날 합탄면(合灘面) 매후리(梅後里) 부근에서는 300여 명이 독립만세를 불렀다. 4월 3일에는 현내면 송정리에서 300여 명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또 금천면 일대에 모인 군중 200여 명이 읍내에서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구이면(口耳面)에서도 면민 300여 명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4월 15일 해주지방법원(海州地方法院) 서흥지청(瑞興支廳)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0년 3월 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2) 별집 제5집 320면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19권 190~191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250~253면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