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1월 충남 당진군(唐津郡) 외맹면(外孟面)에서 최종성의진(崔鍾成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최종성은 정주원(鄭周源) 의병장의 부하로,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된 이후 1907년 9월부터 1909년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죽산(竹山)ㆍ양지군(陽智郡)과 충남 당진(唐津)ㆍ서산군(瑞山郡) 지역을 넘나들며 활동하였다. 최종성은 휘하의 정선경(鄭善京)과 함께 1908년 5월 3일 밤 당진주재소에는 근무하는 순사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하군배는 최종성의진에 들어가 1909년 1월 3일 충남 당진군 외맹면 송당리(松唐里)와 외창리(外倉里)에서 당목(唐木) 35척과 주의(周衣) 1개, 현금 3엔(円) 등 군자금 및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같은 해 5월 15일 외맹면 찬동(讚洞)에서 정선경 등 약 20명의 의병이 당진주재소 순사와 교전 끝에, 수색을 당하여 하군배 등 3명이 체포되었다.
1909년 5월 28일 공주지방재판소(公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7월 23일 경성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控訴院 : 1909. 7. 23)
- 刑事控訴事件簿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5) 제14권 316, 3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