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0년 2월 무렵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함경북도(咸鏡北道) 회령군(會寧郡)으로 돌아온 김명호(金明浩)의 권유를 받아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의했다. 이때 회령군 내 자본가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여 간도 지방에 토지를 매입하고, 한국 동포들을 이주시킬 것을 계획하였다. 이와 함께 토지 경영과 군자금을 기반으로 청년들을 대상으로 군사교육을 시행하여 독립전쟁에 힘쓰기로 계획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같은 해 4월 김명호와 함께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송언동(松堰洞)으로 이동한 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모연대(募捐隊) 소속 이홍래(李鴻來) 등과 계획을 논의하였다. 1920년 5월 2일 김명호, 이홍래 등 5명과 함께 회령군에 위치한 국민학회(國民學會)에 모여 이날 밤 계획을 실행하기 결정했다. 이에 회령군의 자산가 김이옥(金爾玉)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20년 7월 6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강도·정치에 관한 범죄’ 등을 이유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이에 공소하여, 같은 해 10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되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20. 10. 28)
- 매일신보(每日申報)(1920. 8. 5)
- 조선일보(朝鮮日報)(1920.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