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음력 1월과 10월 사이에 전북 순창(淳昌)ㆍ남원군(南原郡)에서 양윤숙의진(楊允淑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양윤숙 의병장은 전북 순창 출신으로 1906년 6월 최익현(崔益鉉)과 임병찬(林炳瓚) 등이 주도한 태인의병(泰仁義兵)에 가담했다가 은거한 우국지사였다. 1907년 7월 일제가 헤이그특사를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군대마저 해산을 하자 의병을 일으켰다. 당시 그는 "비록 무기는 날카롭지 않으나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본의 충신이 된 대한의 난적(亂賊)들을 처단하겠노라"는 포부를 밝혔다. 1909년 9~10월 일제의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이 실시될 때까지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같은 해 12월경 체포되어 1910년 4월 순국하였다.
1909년 음력 1월 양윤숙의진에 참여하여 의병 약 20명과 순창군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같은 해 음력 10월 19일에는 남원군 초랑면(草郞面) 강석동(江石洞)에서, 같은 달 20일에는 순창군 유등면(柳等面) 유촌(柳村)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다 체포되었다.
1910년 1월 7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재물협편(財物脅騙) 및 폭동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12년 11월 20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10. 1. 7)
- 合葬簿(全州刑務所, 191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772~77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