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19년 3월 평북 삭주군(朔州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태형(笞刑)을 받았다.
삭주군에서는 1919년 3월 5일부터 4월 11일까지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기독교와 천도교가 함께 추진한 3월 5일 만세시위에는 군민 3,000여 명이 참여하였다. 이날 일본 헌병의 발포로 4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20명이 체포되었다. 3월 9일에는 읍내 기독교인 50여 명이 다시 만세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한층 거세져 3월 31일과 4월 1일 오전 두 차례에 걸쳐 수천 명의 군중이 헌병분견소를 포위하고 유리창을 부수었다. 4월 2일까지 시위를 이어갔다. 4월 4일에도 500여 명이 읍내에서 시위를 벌였다. 일본헌병대가 대대적인 탄압에 나서자, 6일에는 군민 약 2백 명이 결사대를 편성하여 저항하였다. 그러나 헌병대의 발포로 6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40명이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8일 신의주지방법원(新義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467~46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