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07년 일제에 의한 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을 계기로 의병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심남일은 강무경(姜武景)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1907년 11월 1일 함평군(咸平郡) 신광면(新光面)에서 기치를 올린 후 1909년까지 나주·장성(長城)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심남일의 부장 고성원은 5명의 의병과 함께 1909년 12월 2일 강진군·영암군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12월 3일 영암군 금마면(金磨面) 옥거리(沃巨里)에서 활동을 하였다. 12월 24일 나주군 욱곡면(郁谷面) 신점리(新店里)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10년 3월 3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같은 해 칙령(勅令) 제325호 대사령(大赦令)으로 풀려났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한국독립운동사자료(韓國獨立運動史資料)(국사편찬위원회, 1987) 제16권 347~348면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1988) 제17권 15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