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2년 음력 10월 중국 신빈현(新賓縣)에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입대하고, 1924년 1월 대원들과 평북 벽동군(碧潼郡)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8월 한족회(韓族會),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등이 연합하여 결성한 독립운동단체였다. 복벽주의를 극복하고 공화주의 이념에 기반한 독립 후 국가건설을 목적으로 무장투쟁을 수행하였다. 주요 간부로는 총장 김동삼(金東三), 부총장 채상덕(蔡尙悳), 비서과장 고할신(高轄信) 등이었다.
1922년 음력 10월경 중국 신빈현에서 대한통의부에 입대하였다. 1924년 1월 9일경 대원 8명과 함께 평북 벽동군 오북면(吾北面) 북상동(北上洞)의 자산가를 상대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때 함남 출생의 황교석(黃敎錫)이 인솔하는 부대는 벽동경찰서 용연출장소(龍淵出張所)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이후 1934년 1월 25일 평북 벽동군 오북면에서 벽동경찰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34년 2월 10일 신의주지방법원(新義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미수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5년 8월 10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34. 2. 6)
- 朝鮮中央日報(1934. 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