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4년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일대에서 여러 차례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4년 음력 2월 27일부터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재무부장 홍림(洪林)의 도장이 찍힌 영수증을 가지고 김재헌(金在憲)ㆍ박창섭(朴昌燮)ㆍ최홍윤(崔弘潤)ㆍ김홍기(金弘基)ㆍ한창걸(韓昌杰)ㆍ김희철(金希哲) 등과 함께 음력 5월 29일까지 22회 이상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주로 연길현 용지향(勇智鄕)ㆍ동성용(東盛湧)ㆍ국자가(局子街)ㆍ대허문리(大許門里) 등지의 자산가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적게는 1엔에서 많게는 70엔에 이르는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군자금 모집 당시 대한통의부 총무부 최치원(崔致元), 감리부(監理部) 이태성(李太星), 군무부 홍범도(洪凡道) 등의 명의로 된 선고서(宣告書)를 배포하였다.
일제 간도총영사관(間島總領事館) 경찰서에서는 양계갑 일행을 붙잡기 위해 마쓰오(松尾)ㆍ오카(岡) 두 순사부장을 비롯하여 아홉 명의 순사를 동원해 수색에 나섰다. 결국 군자금 모집원 7명과 함께 1924년 6월 5일 체포되었다.
1925년 2월 4일 청진지방법원(淸津地方法院)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25. 2. 17)
- 假出獄關係書類 ㆍ朝鮮獨立을 표방한 强盜犯人 檢擧에 關한 件(1924. 7. 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9)
- 朝鮮日報(1924. 7. 24, 1925. 2. 17)
- 新韓民報(1924.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