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 정부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하였다. 이에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을사의병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영천(永川)에서는 정환직(鄭煥直)·정용기(鄭鏞基) 부자의 산남의진(山南義陣)이 일어났다. 산남의진은 1906년 3월 정용기를 중심으로 이한구(李韓久)·정순기(鄭純基) 등으로 구성된 비교적 큰 규모의 의진이었다. 초기에 의병장 정용기가 체포되기도 하였지만 청하(淸河)·진보(眞寶)·청송(靑松)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의성(義城)·경주(慶州)·신녕(新寧) 등지의 여러 의진을 아우르면서 의병활동을 계속하였다.
김덕원은 진보군에 거주하던 중 의병 신중평(申重坪)·이만이(李晩伊)에게서 의병에 가입하라는 권고를 받고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그는 영양·울진 등지에서 신중평 등과 함께 3차에 걸쳐서 700냥의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7년 1월 25일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流刑) 10년을 받았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선고서(判決宣告書)(판사서리검사:1907. 1. 2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425~4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