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41년 7월 서울에서 임정호(任程鎬)ㆍ권용옥(權容玉) 등에게 이른바 일제의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비판하고 조선의 독립을 역설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하던 중, 자신이 1941년 5월부터 11월까지 하숙을 하던 서울 전농정(典農町)에 있는 민흥식(閔興植)의 집에서 동료 하숙인들에게 일제의 정책을 비판하고 조선의 독립을 주장함으로써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41년 7월 하순 하숙집의 동료 임정호ㆍ권용옥 등에게, "자신은 이순신(李舜臣)의 후손인데 과거 일본과 전쟁의 역사를 돌아보면 '내선일체'는 어려우며, 지금은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어 있지만 시기가 도래하면 조선은 독립국 또는 자치국이 될 것이니 조선인은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1942년 4월 초순경 임정호ㆍ권용옥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이응렬은 자신의 부친 이종옥(李鍾玉)이 평소 들려주던 이야기를 전달한 것일 뿐이라고 했는데, 과거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부친 이종옥은 1941년 2월 15일 사망한 상태였다. 서울 용산경찰서(龍山警察署)에서 취조를 받고, 같은 해 5월 8일 관계자 11명과 함께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로 이감되었다.
1943년 2월 24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 소장)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2007) 제68집 246~251, 259~264면
- 독립유공자증언자료집(국가보훈처, 2002) 제1권 536면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