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19년 중국 봉천성(奉天省) 관전현(寬甸縣)에서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에 입대하여 검찰(檢察) 및 외무감독(外務監督)으로 임명되어 활동했으며, 1922년 12월부터는 봉천성 흥경현(興京縣) 일대에서 일본 밀정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여기서 조선독립단은 1919년 4월 중국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으로 보인다. 대한독립단은 3ㆍ1운동을 계기로 보약사(保約社)ㆍ향약계(鄕約契)ㆍ포수단(砲手團) 등 주로 의병운동 계열의 단체들이 연합하여 조직된 무장독립운동 단체였다. 대한독립단은 주로 서간도 일대 각 현에 단원을 파견하여 지부를 설치해 독립운동을 권유하는 한편 압록강 연안의 각 단체와 연합하여 국내 진공 작전과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펼쳤다. 특히 압록강 대안인 평안도 일대에 잠입하여 대한독립단 명의의 '경고대한동포(警告大韓同胞)'를 배포하거나 항일 독립의식 고취를 통해 단원 모집과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펼쳤다.
김시홍은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파견된 김식(金植)ㆍ김철의 권유로 중국 관전현에서 대한독립단에 입대하였다. 1919년 9월경까지 군사 훈련을 받고 대한독립단 검찰 및 외무감독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22년 12월 25일에는 대한독립단 총단장 이웅해(李雄海)가 파견한 백문기(白文基)로부터 권총 2정과 밀정처단 명령서를 전달받았다. 그날 저녁 흥경현 백초전자(白草甸子)에 거주하는 일본 군대의 안내자로 독립군을 토벌하는데 앞장 선 일제 관헌의 밀정인 중촌장오랑(中村長五郞)과 그의 처 김상옥(金尙玉)의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1시경 두 밀정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두 밀정은 독립군을 토벌하는 일본 군대와 경찰의 안내자이자 대원으로서, 조선인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조선인 수백 명을 살해하는데도 가담했다.
1923년 4월 18일 신의주지방법원(新義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살인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新義州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4년 3월 7일 경성형무소(京城刑務所)로 이감되어 1929년 9월 12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1921년 중의 管內 不逞鮮人의 狀況(1922. 2. 2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2)
- 假出獄關係書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