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0년 음력 10월경 중국 봉천성(奉天省) 관전현(寬甸縣)에 있는 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總營)의 제1영 제4대 대장으로 평남 대동군(大同郡) 일대에서 친일파 처단 및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광복군총영은 1920년 7월 1일 대한광복군총영 약장(約章)을 발표하면서 조직된 무장독립운동 단체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군무부 직할로 군사기관인 광복군사령부를 두었으나, 1920년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거의 활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광복군사령부 지방국의 제2영장 오동진(吳東振)이 관전현 향로구(香爐溝)에서 광복군사령부를 광복군총영으로 개칭하고 총영장에 취임하였다.
광복군총영 제1영 제4대장으로 단장 이탁(李鐸)의 명령을 받고 1920년 음력 10월경 부하 함찬희(咸贊熙)ㆍ박연일(朴演日) 등을 인솔해 평남 대동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과 대동군 내 각 면장에게 사직을 권고하는 문서를 발송하는 활동을 하였다.
1920년 음력 10월 17~18일경 함찬희와 함께 의주군(義州郡) 고관면(古館面) 서하동(西下洞)에서 "자신들은 독립단원(獨立團員)으로 독립군자금을 제공하라"고 하며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일에는 의주군 위원면(威遠面) 상단리(上端里)에서, 28일에는 평양(平壤) 진향리(眞香里)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비밀리에 평양에서 활동하던 중 이듬해 1월 20일경 체포되었다.
1921년 5월 21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이른바 강도ㆍ가택침입ㆍ공갈죄,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7년 7월 2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假出獄關係書類
- 東亞日報(1921.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