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3년 5월 중국에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입대하여 활동하였으며, 1924년 8월부터 평북 초산(楚山)ㆍ벽동(碧潼)ㆍ창성(昌城)ㆍ삭주(朔州)ㆍ의주군(義州郡)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 경찰과 교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8월 한족회(韓族會),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등이 연합하여 결성한 독립운동단체였다. 복벽주의를 극복하고 공화주의 이념에 기반한 독립 후 국가건설을 목적으로 무장투쟁을 수행했다. 주요 간부로는 총장 김동삼(金東三), 부총장 채상덕(蔡尙悳), 비서과장 고할신(高轄信) 등이었다.
1923년 5월 10일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대한통의부에 입대하였다. 1924년 8월 15일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대원 4명과 함께 권총과 장총 등으로 무장하고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평북 초산군 서태면(西泰面) 신도장(新島場) 부근에서 9월 하순까지 활동하였다.
1924년 8월 30일에는 의주군 송장면(松長面) 영달동(永達洞)에서 군자금 200원을 모집하고, 이 과정에서 의주경찰서 경찰 3명과 교전하기도 하였다. 1924년 8월과 9월 사이에도 일제 경찰과 직접 전투를 벌이며 700여 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32년 초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같은 해 6월 13일 신의주지방법원(新義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務廳)
- 東亞日報(1932. 6. 17)
- 朝鮮日報(1932.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