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4월
동년 5~9월 미국 200여 곳에서 조선의 참상을 알리는 강연활동을 벌이고, 동년 10월 잠시 입국했다가 11월 경 출국 시 이상재로부터 3·1운동에 관한 문건을 받고 출국하여 이승만에게 전달하였으며, 1920년 1월 보스톤에서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5월 3ㆍ1운동 관련 자료를 짐속에 숨겨 미국에 가져가 전하고, 구미위원부 선전원, 한국친우회, 한인구제회 총무로 활동하며 한국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벡은 맥밀리언대학과 네브라스카 웨슬리안신학교를 졸업하고, 1899년 11월 미감리회 한국 선교사로 내한하였다. 북감리회 출판사 책임자와 북감리회 연회 서기 및 회계로 선교활동을 하다가 1908년 귀국하였다. 1911년 5월 미국성서공회 한국 총무로 다시 내한하여 활동하다가 1919년 5월 미국으로 돌아가 12월 총무를 사임하였다.
1919년 4월 영국 영사와 외신 기자, 선교사 일행이 ‘제암리교회 방화 학살 사건’ 현장을 방문할 때 동행하였고, 5월 미국으로 떠날 때 ‘한성정부(漢城政府)’ 문건을 포함한 3ㆍ1운동 관련 문서들을 소지품에 숨겨 미국에 가져가 전했다. 같은 해 7월 미국 마이애미교회 박람회에 ‘제암리사건’ 사진을 전시해 일제의 잔인한 시위 진압과 피해 조선인의 참상을 폭로하였고, 상원의원 노리스에게 사진을 전달하여 의회 석상에서 공식 발언하도록 하였다. 1919년 5~9월 미국 200여 곳에서 한국의 참상을 알리는 강연 활동을 했고, 10월 잠시 내한하였다가 11월경 귀국할 때 이상재(李商在)에게서 받은 3ㆍ1운동 문건을 이승만(李承晩)에게 전달하였다. 1919년 9월 구미위원부 선전원에 임명되었고, 1920년 3월 한국친우회 총무 명의로 미국 국무장관 콜비에게 미국의 개입을 촉구하는 워싱턴 목회자 연합회의 ‘한국에 관한 결의안’을 제출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新韓民報(1919. 7. 10, 8. 19, 1920. 5. 11, 11. 25)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7) 제18권 24~26면
- 雩南李承晩文書 東文篇(雩南李承晩文書編纂委員會 編, 1998) 제4권 189~190면
- 尹致昊日記(國史編纂委員會, 1976) 제7권 398면
- 한국독립운동을 도운 미국인(홍선표,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43집, 2012) 19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