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4월 경기 화성군(華城郡) 우정면(雨汀面) 화수리(花樹里)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순국하였다.
1919년 4월 3일 아침 일찍부터 장안면(長安面) 석포리(石浦里) 주민과 우정면 주곡리(珠谷里) 주민들이 합류하여 장안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여기에 수촌리(水村里) 주민 100여 명도 독립만세를 연호하며 장안면사무소로 갔다. 오전 10시 30분경 장안면사무소에 모인 시위 군중은 면사무소 안으로 들어가 면장 김현묵(金賢默)을 시위에 참여시키는 한편 면사무소 서류와 집기를 불태웠다. 그리고 시위 군중은 쌍봉산으로 이동하여 만세를 부른 후 우정면사무소가 있는 화수리로 향하였다. 이들이 도착했을 때, 우정면사무소의 면장과 서기들은 이미 도망치고 없었다. 이에 군중은 탁자ㆍ의자 및 장부ㆍ서류 전부를 태웠다. 이어 화수주재소로 몰려갔다. 그러자 카와바타(川端) 순사가 총격을 가해, 군중 속에 있던 송 노인이 희생되었다. 흥분한 군중은 화수주재소를 불태우는 한편 천단 순사를 처단하였다.
4월 4일 새벽,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일본군 제20사단 39여단 78연대 소속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가 이끄는 1개 소대 병력이 화수리를 포위하고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다가 몽둥이질을 하였다. 4월 5일 수촌리를 포위하고 집집마다 불을 놓아 불길을 피해 뛰쳐나오는 주민들에게 사정없이 총질을 했다. 이와 같은 탄압은 주곡리ㆍ석포리ㆍ화산리(花山里)ㆍ호곡리(虎谷里)ㆍ운평리(雲坪里)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4월 10일부터 11일 오후 5시까지 화수리를 중심으로 25개 마을을 수색하여 200여 명을 검거하였고, 검거는 17일까지 계속되었다. 검거 과정에서 우정면 화수리는 탄압을 받아 22채의 집이 소실되고, 3명의 사상자를 냈다. 송성호도 이때 일제의 총탄에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3ㆍ1運動時被殺者名簿(국가기록원 소장, 1953)
- 現代史資料(姜德相, 1967) 제26권 311~313, 317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162~16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