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0년 중국 봉천성(奉天省) 집안현(輯安縣)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입대하여 평북 의주군(義州郡)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1922년 8월에는 남만한족통일회(南滿韓族統一會)에 대한독립대표로 참석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독립단은 3ㆍ1운동을 계기로 보약사(保約社)ㆍ향약계(鄕約契)ㆍ포수단(砲手團) 등 주로 의병운동 계열의 단체들이 연합하여 1919년 4월 중국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조직된 무장독립운동 단체였다. 주요 간부는 조맹선(趙孟善)ㆍ백삼규(白三奎)ㆍ조병준(趙秉準) 등으로, 1920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광복군사령부에 편입되어 활동하였다. 국내외에 100여 개소의 지단과 지부를 두었는데 평북에는 용천군(龍川郡)ㆍ철산군(鐵山郡)ㆍ영변군(寧邊郡)ㆍ정주군(定州郡)ㆍ태천군(泰川郡)ㆍ가산군(嘉山郡) 등에 지단이 설치되었다.
1920년 1월경 집안현에서 대한독립단 대원 김유성(金有聲)의 권유로 대한 독립단에 입대하였다. 같은 해 9월 21일 대한독립단원 김상율(金尙律)의 지휘 아래 김일록(金日綠) 외 3명과 함께 의주군 송장면(松長面) 송산동(松山洞)에서 "우리들은 조선독립단원인데 군자금을 제공하라"며 군자금 90원을 모집하였다. 1922년 6월 3일에는 단원 김덕산(金德山)의 지휘 아래 오병선(吳炳善) 외 5명과 함께 초산군(楚山郡) 서면(西面) 무학동(舞鶴洞)에서 "우리들은 지나지(支那地)에서 와서 군자금 모집을 위해 배회(徘徊)하는 자들인데 너도 돈을 내라"며 300엔(円)을 모집하였다. 이후 1923년 1월 3일 단원 이칠성(李七星)의 지휘 아래 초산군 앙토동(央土洞)과 초산군 서면 용상동(龍上洞) 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8년 11월 7일 신의주지방법원(新義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강도죄 및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34년 11월 16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假出獄關係書類
- 不逞鮮人 動靜(1922. 2. 2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1)
- 南滿韓族統一會 決議事項 및 職員布告文 入手에 關한 件(1922. 9. 2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4)
- 海外要注意鮮人名簿(日本 外務省) 270면
- 東亞日報(1921. 9. 24, 9. 27. 1927. 3. 30)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5권 4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