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전북 순창(淳昌), 전남 담양(潭陽)에서 채영찬의진(蔡永贊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채영찬은 1906년 최익현의진(崔益鉉義陣)의 대포장(大砲將)으로 순창전투에 참가하였다. 순창전투에서 일본군의 추격을 받을 때 임병찬(林炳瓚)의 명령으로 의병 명부를 가지고 탈출해서 많은 의병들의 체포를 모면하게 하였다. 그 뒤 순창에서 창의하였던 김상기의진(金相璣義陣)에 참여하여 경남 하동(河東)과 전남 광양(光陽)에서 창의한 백낙구(白樂九)와 함께 순천(順川)을 공격하다가 체포되어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다.
양성언은 1908년 음력 3월 채영찬의진에 참여하여 순창군 하치등면(下置等面) 석동암(石東岩)에서 일본군 순창수비대와 교전했다. 의병장 채영찬이 전사하자, 그 뒤를 이어 같은 해 11월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순창군 하치등면 능동(綾洞)에서 동장으로부터 금 3관문(貫文)을 군자금으로 모집했다. 1909년 2월에는 휘하의 의병 16명을 거느리고 순창군 삼체면(三體面)을 근거지로 삼고 담양군 용면(龍面)과 천면(泉面)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같은 해 2월 23일 순창군 금정리(金井里) 자택에서 담양주재소 순사 4명과 담양수비대 일본군 6명으로 편성된 수색대에 체포되었다.
1909년 4월 14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종신징역(終身懲役)을 받았다. 이에 공소했으나 5월 31일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14년 2월 26일 형집행정지로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刑事控訴事件簿
- 暴徒 首魁 체포의 건(1909. 2. 27) 暴徒에 關한 編冊
- 暴徒 首魁 체포의 건(1909. 3. 16) 暴徒에 關한 編冊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4) 제13권 419~420, 432, 68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