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9월 함남 원산부(元山府) 동락좌(同樂座)와 북촌동(北村洞) 경찰관 파출소 앞에서 시위 군중을 이끌고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9월 22일 밤 최종현ㆍ최종빈(崔鍾濱)ㆍ김연희(金演熙)ㆍ이용구(李容九) 등과 이튿날인 23일 원산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했다. 23일 최종현(崔鍾泫) 등은 원산부 장촌동(場村洞) 장춘교(長春橋) 부근에서 한양가(漢陽歌)라는 반일적 창가를 부르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만세 소리를 듣고 모여든 수백의 군중은 남산교(南山橋), 공립보통학교(公立普通學校), 극장 동락좌, 북촌동 시장, 파출소 등으로 이동하면서 만세를 불렀다.
남상빈은 동락좌 부근에서 시위대에 가담해, 원산부 북촌동으로 행진하여 경찰관 파출소 부근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0년 12월 23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8월 받고 공소했지만, 1921년 2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1년 1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咸興地方法院 : 1920. 12. 23)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21. 2. 23)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每日申報(1920. 12. 7, 12. 9, 12. 10, 1921. 2. 16, 10. 27)
- 獨立新聞(1921. 1. 21, 11. 11)
- 新韓民報(1921. 3. 10)
- 東亞日報(1921. 2. 24, 10. 30)
- 思想月報(朝鮮總督府檢査局, 1933) 제1권 제5호 485~500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675~67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