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황해도 황주군(黃州郡) 주남면(州南面) 이우리(梨隅里)에서 황주국민회(黃州國民會)에 가입해 활동하고, 1921년 3월 중국 요령성(遼寧省) 관전현(寬甸縣)에 있는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이 운영하는 무관학교에 입대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군총영은 1920년 광복군사령부 지방국의 제2영장 오동진(吳東振)이 관전현 향로구(香爐溝)에서 광복군사령부를 광복군총영으로 개칭하고 총영장에 취임하며 결성되었다. 총영장 오동진, 군사부장 겸 참모부장 백남준(白南俊), 경리부장 이관린(李寬麟), 천마별영장 최시흥(崔時興), 벽파별영장 김영화(金永和) 등이 간부로 활동했다. 조직이 결성된 이후 안주(安州)ㆍ신의주(新義州)ㆍ선천(宣川) 등지에서 조선총독부 기관을 폭파하고 밀정을 처단하는 활동을 하였다. 1922년 여러 독립운동단체가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로 개편될 때 이에 통합되었다.
1920년 8월 김필선(金弼善)의 권유로 황주국민회에 가입한 후 현금 150원을 총기 구입비로 제공했다. 그리고 이창언(李昌彦)ㆍ한응제(韓應濟)ㆍ이동찬(李銅贊) 등에게 권유하여 국민회에 가입하도록 했다. 1921년 3월 황주국민회 활동이 일제 경찰에 탐지되자 관전현 광복군총영 무관학교에 입대하기 위해 이동하다가 신의주에서 체포되었다.
1921년 11월 16일 신의주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每日申報(1921. 12. 3)
- 東亞日報(1921. 12. 5)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