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부터 1909년까지 전남 광주(光州)에서 김동수의진(金東洙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전남 광주 출신의 김동수는 1907년 이원오(李元五)ㆍ조경환(曺京煥)ㆍ양상기(梁相基)ㆍ김현길(金玄吉) 등과 광주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08년 2월부터 1909년 4월 초까지 양진여의진(梁振汝義陣)과 합진하여 전남 광주ㆍ순창(淳昌) 일원에서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 후 김동수는 양진여의진에서 분진(分陣)하여 6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전남 화순(和順)을 근거지로 삼고, 1909년 5월 19일 광주 덕산면(德山面)에서 일본군 헌병대 광주분견소를 공격하였다. 같은 달 31일에도 광주 갑마보면 본촌(本村)에서 광주경찰서 순사대와 교전하는 등 담양(潭陽)ㆍ장성(長城)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9년 9월 사창전투(社倉戰鬪)에서 오른쪽 다리에 총상을 입고 체포되어 징역 15년을 받고 옥중 순국하였다.
이기섭은 김동수의진에 참여하여 1908년 12월경, 1909년 5월 초 광주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5월 7일 광주 석제면(石堤面) 외촌(外村)에서 잠복하고 있던 광주경찰서 순사에게 체포되었다.
1909년 6월 9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 및 강도죄, 모살죄(謀殺罪)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1912년 칙령 제23호에 의해 징역 5년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受刑人名簿
- 刑事控訴事件簿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4) 제14권 372면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8) 제16권 591~59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