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8월 이강산의진(李江山義陣)에 참여하여 나주헌병분견소(羅州憲兵分遣所) 구밀파견소(求密派遣所)의 밀정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9년 8월 이강산 의병장의 지시에 따라 박치일(朴致一)ㆍ정인술(鄭寅述)ㆍ박장봉(朴章奉)ㆍ서성학(徐成學)ㆍ장한순(張漢順)과 함께 전남 함평군(咸平郡) 대월면(大月面) 소재 주막에서 나주헌병분견소 구밀파견소의 밀정 이판안(李判安)ㆍ김정태(金正泰)ㆍ최치도(崔致道)ㆍ박복남(朴福男) 등을 처단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양창국(梁昌國)ㆍ박병수(朴丙洙)와 합세하여 4명의 밀정을 모두 처단하였다.
지갑진은 일제의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 기간인 1909년 10월 2일 임시한국파견대(臨時韓國派遣隊)에 자수했으며, 위의 사실을 알게 된 일제는 11월 15일 구금하여 재판에 넘겼다.
1909년 12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 및 모살죄(謀殺罪)로 종신 징역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징역 12년형으로 감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控訴院 : 1910. 3. 8)
- 刑事控訴事件簿
- 受刑人名簿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6) 제15권 77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84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