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중국 집안현(輯安縣) 마제구(馬蹄溝)에서 독립단(獨立團) 검찰(檢察)로서 독립운동 반대자 처단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독립단은 박장호(朴長浩)ㆍ조맹선(趙孟善) 등이 중심이 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으로 보인다. 대한독립단은 3ㆍ1운동을 계기로 보다 효과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보약사(保約社)ㆍ향약계(鄕約契)ㆍ농무계(農務契)ㆍ포수단(砲手團) 등 주로 의병운동(義兵運動) 계열의 인사들이 1919년 4월 각 단체를 해산하고 결성하였다. 본부는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두었으며, 도총재는 박장호, 부총재는 백삼규(白三圭)였으며, 도총재부 산하에는 사무기구로 총단(總團)이 있었는데 총단장에 조맹선, 부단장에 최영호(崔永浩)ㆍ김원섭(金元燮) 등이었다.
양용태는 1919년 10월 대한독립단 단원 김정삼(金貞三) 등과 집안현에서 조선인조합지부 구장을 처단하려고 했고 1920년 6월 집안현 마의하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21년 3월 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普通報 제9호(1919. 11. 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3)
- 鴨綠江沿岸地方 不逞鮮人 狀況에 관한 건(1920. 6. 2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8)
- 現代史資料(姜德相, 1972) 제28권 34~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