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월 평북 정주군(定州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주군의 첫 독립만세운동은 3월 5일에 있었다. 이날 오후 1시 반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이 읍내를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해산하였다. 이어 3월 31일 정오가 되자 읍내 정주우편국 앞에는 독립선언서가 배포되고, 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렸다. 신안(新安)ㆍ동주(東州)ㆍ고현(高峴) 등의 면에서는 읍성(邑城)의 동문(東門)으로, 언(伊彦)ㆍ덕달(德達)ㆍ아이포(阿耳浦)ㆍ마산면(馬山面)에서는 남문으로, 그리고 임해면(臨海面) 일대에서는 서문으로 밀려들었다. 모여든 시위 군중이 무려 25,000여 명에 이르자, 헌병이 총격을 가해 해산되었다.
안택수도 정주군의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1919년 4월 5일 평양지방법원 정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449~454면
- 국내 3ㆍ1운동(독립기념관, 2009) ⅰ 258~25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