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중국에서 독립운동가들과 연락을 갖고, 1922년 서울 적선동(積善洞)에서 군사통일회(軍事統一會) 명의로 군자금을 모집하려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4월 중국 북경(北京)으로 건너가 상해(上海)ㆍ장춘(長春)ㆍ간도(間島) 일대를 돌며 독립운동가들과 연락을 가졌다. 1922년 1월 북경에서 서울 적선동에 사는 부호 윤용식(尹容植)에게 군사통일회의 이름으로 군자금 모집 명령서를 발송하였다.
군사통일회의 정식 명칭은 북경군사통일회이며, 1921년 중국 북경에서 독립운동을 위한 각 군사단체의 대표자가 모여 군사통일을 논의했던 회합이었다. 박용만(朴容萬)ㆍ신채호(申采浩)ㆍ신숙(申肅) 등 9명이 중심 인물이었으며, 선전 활동을 위해 신채호를 주간으로 한 잡지 『대동(大同)』을 발행했다.
신달선은 1922년 1월 22일 서울로 와 한규설(韓圭卨)ㆍ윤용식 등에게 태평양회의를 독립의 기회로 이용하기 위해 북간도 독립군 출병에 필요한 군자금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1922년 1월 26일 윤용식 친척의 밀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2년 3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 1922. 3. 3)
- 每日申報(1922. 2. 7, 2. 19, 3. 1)
- 東亞日報(1922. 2. 19,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