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4월 함북 온성군(穩城郡) 영충면(永忠面) 회덕동(懷德洞) 회동교(懷洞橋)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천도교인 전창우(全昌禹)는 3월 30일 온성에서 김창욱(金昌旭)을 찾아가 독립선언서를 전하고 안병손(安秉孫) 등과 4월 4일 영충면 회덕동 회동교에서 시위를 하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곧 큰 태극기 1매와 작은 태극기 35매를 만들었다. 약속한 4월 4일 10시가 되자 회동교에는 약 2백 50명의 군중이 모여 들었다. 군중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영충면사무소를 지나 북창평(北蒼坪) 시장을 향하여 전진하였다. 북창평 헌병파견소에서는 즉시 헌병 15명을 출동시켜 총칼을 휘둘렀고, 군중은 돌을 던지며 저항하였다. 그러자 헌병들은 군중을 향하여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다. 2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3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5명이 체포되었다.
전인갑은 이날의 만세시위로 체포되어 1919년 4월 25일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779~78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