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3월 평북 의주군(義州郡) 가산면(加山面)에서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중국 관전현(寬甸縣) 소전(蘇甸)에 거주하던 신승관은 1920년 3월경 박추모(朴秋模)의 부하 한원보(韓元甫)의 권유로 대한독립청년단에 가입했다. 관전현에서 최태산(崔泰山) 외 6명으로부터 인구세 10원 50전을 모집하였고, 같은 해 8월경 김병홍(金丙洪) 등으로부터 인구세를 거두어 박추모에게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신승관이 청년단에 가입하기 전인 1920년 2월 평북 의주군 가산면에 거주하는 김상연(金尙連)ㆍ박의식(朴義植)ㆍ계용수(桂龍守)ㆍ김진기(金珍基) 등은 대한독립청년단 총재 오능조(吳能祚)의 권유로 군자금 모집을 목적으로 하는 독립청년단 지단을 조직하였다. 박의식을 단장, 계용수를 부단장, 김상연을 서기, 김진기를 재무로 선임한 뒤, 각각 20원 내지 50원을 자금으로 내어 오능조에게 제공하였다. 이어 동리에 거주하는 박세윤(朴世潤) 등으로부터 입단금 200여 원을 모집하여 오능조에 교부하였다.
1921년 9월 15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每日申報(1921. 11. 8)
- 東亞日報(1921.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