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월 평남 강서군(江西郡) 함종읍(咸從邑)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1921년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8일 평남 강서군 함종읍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출신 개업의(開業醫) 강기팔, 잡화상 김용수(金龍洙), 범오리(範五里)에 거주하는 이능훈(李能勳)ㆍ오영선(吳永善) 등이 주도하여 그곳 공립보통학교 교정에서 5백여 명의 군중이 모여 일어났다. 시위는 부근의 발산(鉢山)ㆍ승영(升盈)ㆍ광덕(廣德)ㆍ계명(桂明) 등 각 동리에서도 참가하여 2천여 명에 이르렀다. 이날 시위로 강기함은 1919년 7월 2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1년 7월경에는 김현승(金鉉昇) 등과 함께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원조하여 독립을 달성할 목적으로 강서군 함종면 송동리(松洞里) 주민들을 중심으로 비밀결사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단용(團用) 인장과 단원 증서를 발행하고 단원 수십 명을 모집했다. 그리고 단원 1인에게서 월사금 1원씩을 거두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냈다. 이후 곽대민(郭大民)ㆍ윤석갑(尹錫甲)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3월 31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405~40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487~488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21. 2. 24, 3. 31, 4. 2)
- 每日申報(1921. 3. 29)
- 新韓民報(1921. 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