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2년 중국 길림성(吉林省) 통화현(通化縣)에서 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1928년 반석현(盤石縣)에서 정의부(正義府) 반남특별구(盤南特別區) 경비대원(警備隊員)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2년 12월 18일 독립단에 가입하고, 1923년 3월 20일경 휘남현하(輝南縣下)로 가서 농민들에게 매호(每戶) 마다 독립단비를 모집하다 같은 달 30일 보민회장(保民會長)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1928년 음력 1월에는 길림성 반석현에서 정의부에 가입한 후 반남특별구 경비대원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정의부는 1924년 11월 24일 중국 화전현(樺甸縣)에서 설립된 독립운동단체이다. 입법ㆍ사법ㆍ행정의 3권 분립 체제를 갖춘 중앙조직을 설치하고, 하얼빈 이남의 40여 개의 현(縣)에 거주하는 한인을 기반으로 자치행정을 실시하는 한편, 의용군을 편성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중앙행정위원회 위원장은 이탁(李?)이었으며, 중앙행정위원은 현정경(玄正卿)ㆍ지청천(池靑天)ㆍ이진산(李振山)ㆍ김용대(金容大)ㆍ김이대(金履大)ㆍ윤병용(尹秉庸)ㆍ오동진(吳東振)ㆍ김동삼(金東三)이었다. 정의부의 무장투쟁은 의용대(義勇隊)를 중심으로 한 국내 진공작전이 이루어졌으며, 만주 내에서의 무장활동은 모험대(冒險隊) 또는 암살대(暗殺隊)에 의한 전투활동과 군자금 모집을 목적으로 한 모연대(募捐隊)의 활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관할지역 한인사회의 자위(自衛)를 위한 보안대(保安隊) 등을 편성하고 있었는데 특히 보안대는 의용군이 아닌 각 지역의 청장년이 중심이 되어 편성된 지역대(地域隊)였다. 이들은 만주지역 내의 친일세력이나 일제 경찰에 대한 처단에 주력하였으며, 1929년 12월 정의부 주력은 국민부(國民府)로 발전하였다.
1929년 음력 3월 12일 2명의 동지와 함께 정의부에서 교부한 권총 1정씩을 휴대하고 휘남현(輝南縣) 유수구(楡樹區)에서, 같은 달 13일에는 안자하(安子河)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4월 23일에 체포되었다.
1929년 6월 12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같은 해 7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假出獄關係書類
- 東亞日報(1929. 12. 20)
- 中外日報(1929. 7. 14)
- 不逞鮮人의 狀況에 關한 件(1923. 4. 1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