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36년 평북 초산군(楚山郡)에서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제3중대 소대장 김병하(金炳河)의 명령을 받고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조선혁명군은 1927년 9월에 개최된 정의부(正義府) 중앙회의(中央會議)에서 정의부 의용군(義勇軍)의 명칭을 조선혁명군으로 변경하였으며, 1929년 4월 정의부 주도세력이 국민부(國民府)를 결성하자 그대로 계승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혁명군은 국민부와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휘하의 군사조직으로 활동하였으며, 만주사변 이전에는 주로 친일세력의 숙청, 교민 보호, 국내 진입작전에 의한 일제 기관의 파괴 및 일제 관헌 등에 대한 응징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1936년 6월 4일 평북 초산군 성서면(城西面) 연담동(蓮潭洞) 중단리(中端里)에 파견된 조선혁명군 제3중대 소대장 김병하 등은 면협의원(面協議員) 오시화(吳始化) 등 3명을 붙잡아 갔다. 이때 장진봉은 조선혁명군의 길 안내와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37년 2월 2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및 편취(騙取), 공갈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韓民(1936. 9. 30)
- 思想彙報(1937. 3. 1)
- 朝鮮中央日報(1936. 8. 23,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