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 4월경 평북 구성군(龜城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구성군의 만세시위는 3월 11일 오후 2시경 방현면(方峴面) 남시(南市)에서 군중 4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시작되었다. 3월 18일 사기면(沙器面) 신시(新市)에서 기독교인의 주도로 만세를 부르다 10여 명이 체포되었다. 3월 31일 읍내에서는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한 300여 명의 군중이 시위운동을 벌였다. 4월 1일에는 읍내와 남시ㆍ신시에서 일어났다. 읍내에서는 이날 상오 10시경 900여 명 가량의 군중이 시위운동이 일어났다. 남시에서도 시위가 재개되었다가 강제 해산되었으며, 신시에서는 이날 상오 10시경에 1,500명 이상의 군중이 시위를 재개하였다가 경찰의 발포로 5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30명이 체포되었다.
장득세는 1919년 3, 4월경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8일 평양지방법원 정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45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