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1~1926년 중국 요령성(遼寧省) 환인현(桓仁縣)에 근거지를 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와 1929년 2월~1931년 12월 신빈현(新賓縣)에 근거지를 둔 국민부(國民府)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국민부는 1929년 4월 정의부(正義府)ㆍ신민부(新民府)ㆍ참의부(參議府)의 대표가 모여 결성하였으며, 요령성 신빈현 흥경(興京)에 본부를 두었다. 1929년 5월 28일 중앙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산하에 민사ㆍ경제ㆍ외교ㆍ군사ㆍ교육ㆍ법무ㆍ교통위원회와 중앙호위대 및 8개 중대의 군대를 조직했다. 또한 1929년 12월 이당치국(以黨治國), 이당공작(以黨工作)의 원칙에 입각해 국민부를 이끌기 위한 유일당(唯一黨)으로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을 결성하였으며, 군사조직으로는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을 두었다.
백찬복은 1921년 6월 대한통의부에 가입하여 흥화지방(興化地方)에서 1926년까지 의무금(義務金) 모집에 종사하였다. 1929년 2월에는 신빈현 대호륜(大呼倫)에 있는 국민부에 가입하여 무본(撫本) 지방 제2구 집행위원장으로 1931년까지 2천여 원의 의무금을 모집하였다. 1931년 12월 이경조(李京兆)와 이순범(李順範) 등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었다.
1932년 4월 3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32. 3. 27, 4. 29, 5. 3)
- 每日申報(1932. 3. 27,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