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2년부터 1925년까지 중국 관전현(寬甸縣)에 소재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제3중대 제3소대 부사(副士)로서 평북 초산군(楚山郡)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준정부적인 성격을 지닌 독립운동단체로 조직되었으며, 한인사회의 자치행정과 항일무장투쟁에 주력하였다. 1922년 말~1923년 초에 개최된 통의부 제1회 중앙의회에서는 한인자치를 위해 각 지역에 총 16개의 총관소(總管所)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총관소에는 총감(總監) 이하 구장(區長)ㆍ참사(參事)ㆍ서기(書記)ㆍ검무감(檢務監)ㆍ검무원(檢務員)ㆍ통신원(通信員)을 각 1명씩 두었다. 총감은 1,000호(戶)의 장(長)으로 하고 담당구역을 4~5개로 나누었다. 대한통의부는 임시정부를 비롯하여 광정단(匡正團) 등 독립운동단체들과 연계하며 공동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24년 11월 정의부(正義府)가 조직되면서 상당수가 이에 흡수되었다.
송병윤은 1922년 음력 8월 중 대한통의부원 길응린 등과 함께 초산군 서면(西面) 삼상동(三上洞)에서 200여 원의 군자금을 모집하고, 1923년 음력 4월에도 삼상동에서 80여 원의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8년 8월 23일 신의주지방법원 초산지청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2년 12월 15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假出獄關係書類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謄本(新義州地方法院 楚山支廳 : 1928. 8. 23)